늑대와 춤을은 1863년 남북 전쟁 중 부상으로 영웅이 된 존 던바 중위가 프론티어를 보기 위해 사우스다코타 주의 외딴 요새로 부임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던바는 그곳에서 수족 인디언과 교류하며 그들의 삶에 동화되고,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와 사랑에 빠져 수족의 일원이 된다. 이 영화는 백인과 인디언의 갈등과 화해, 문화적 교류를 다루며, 제6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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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부터 펼쳐진 남북 전쟁 시대의 프런티어를 무대로 북군 중위와 수족이라 불리는 인디언 사이에서 맺어지는 마음의 교류를 그린 서부극이다. 선주민족인 인디언을 학살하고 버팔로를 멸종 직전으로 몰아넣은 백인 중심주의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프론티어에 대한 경의와 향수를 표현한 점에서 기존 서부극과는 크게 선을 그으며, 그전까지의 "어눌한 영어를 쓰는 인디언"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도 벗어나 "인디언들이 그들의 언어로 말한다"는 점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타탄카(버팔로)"라는 단어도 이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작품 속에서 종종 사용되는 라코타어에 영어자막이 달린다는 점에서도 이색적인 작품이다. 다만 인디언 언어에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남성어와 여성어의 구별이 있는데, 언어 지도자가 여성뿐이었기 때문에 배우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여성어 지도를 받았다.러셀 민스에 따르면, 라코타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는 내용이 되었다고 한다.
마이클 블레이크의 원작 소설은 발표 당시 백인을 비판하는 내용에 혐오감을 느낀 다수의 출판 관계자들에 의해 출판이 거부되었다. 하지만 배우케빈 코스트너는 원작의 내용에 호감을 느껴(코스트너 자신도 체로키와 독일, 아일랜드 혼혈이다) 블레이크에게 자신이 감독도 겸임하는 형태로 영화화를 간청했다.1988년에 드디어 원작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과 동시에 코스트너는 《언터처블》, 《필드 오브 드림스》의 성공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스타의 지위를 확립하고 거대한 부를 얻었다. 그 작품들로 얻은 사재를 모두 쏟아부어 1989년 7월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원작에서 주인공과 교류하는 인디언 부족은 코만치족이지만, 영화화하면서 이는 같은 평원의 부족인 수족으로 설정이 변경되었다. 이 영화에는 "텐 베어스"라는 수족의 "추장"이 등장하지만, 동시대에 있었던 실제 텐 베어스는 얌파리카 코만치족의 인물이다. 또한, 동시대의 "키킹 버드"는 카이오와족의 인물이며, 주술사가 아니었다. 이러한 불일치는 영화화 과정에서 부족 설정 변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실제 "텐 베어스"도 "키킹 버드"도 "족장"이 아니다.
작품의 설정 연도는 전후 사건으로 미루어 1864년으로 보이지만, 작중에서 그려진 역사적 사건으로 미 육군이 텐 베어스 일행을 찾아 대원정을 벌이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실제 미 육군의 겨울 대원정은 1868년 11월이며, 이는 연대가 맞지 않는다.
영화사에 남을 만한 웅대한 스케일의 원시 풍경은 일부 와이오밍주를 제외하고 거의 사우스다코타주에서 촬영되었다. 그 외에도 배드랜드 국립공원과 피어에서도 로케이션 촬영이 진행되었다.
3. 1. 서부로의 여정
1863년 가을, 테네시 주는 남북 전쟁의 격전지가 되었고, 북군 중위였던 존 던바는 그 속에서 오른발에 중상을 입는다. 발을 절단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던바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미끼가 되어 남군 병사들의 주의를 흩뜨렸다. 그 틈을 타 북군은 일제히 진격을 시작하여 승리하였다. 이후 영웅이 된 던바는 자유롭게 근무지를 선택할 권리를 얻었고, "잃기 전에 프론티어를 보고 싶다"며 사우스다코타 주의 세지윅 요새로 부임을 자청했다. 탁 트인 황무지와 황폐한 "요새"에서 던바는 자급자족 생활을 시작했다.
개척과 식사, 그리고 사랑하는 말 시스코와 "투 삭스(두 개의 양말)"라고 이름 붙인 늑대와 어울리는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수족인디언이 시스코를 훔치러 오자, 던바는 총으로 위협하여 쫓아냈다.
3. 2. 수족과의 만남
1863년 가을, 테네시 주에서 중상을 입은 존 던바 중위는 프론티어를 보기 위해 세지윅 요새로 간다. 그곳에서 늑대 '투 삭스'와 시간을 보내던 중, 수족인디언이 던바의 말 시스코를 훔치려다 실패한다. 수족 부락에서는 던바와 접촉하기로 결정하고, 던바 역시 그들과의 만남을 원한다. 던바는 부상을 입은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수족 부락으로 데려다준다. 그녀는 푸른 눈을 가졌으며, 파우니족에게 가족을 잃고 수족에게 길러졌다.
처음에는 수족 사람들이 던바를 불신했지만, 추장의 배려로 '발로 차는 새'와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던바에게 보낸다. 이들은 던바의 환대에 호감을 느끼고, 수족들은 던바를 자주 찾아오면서 서로 우호가 깊어진다.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는 라코타어와 영어를 할 수 있어 통역을 자청한다. 그녀와 '발로 차는 새'의 도움으로 던바와 수족 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어느 밤, 던바는 버펄로 떼의 이동을 발견하고 수족에게 알린다. 수족은 던바를 인정하고, 던바는 수족과 함께 버펄로 사냥에 참여하며 평안함을 느끼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깨닫는다.
던바는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의 상을 풀어준 후 결혼하여 티피를 받는다. 던바는 '늑대와 춤을'이라는 인디언 이름을 얻고 수족의 일원이 된다.
3. 3. 문화적 교류와 갈등
수족이 던바의 말 시스코를 훔치려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던바는 이들과 접촉을 시도한다. 수족 부족 역시 던바와의 접촉을 원했고, 서로 우호를 깊게 한다. 던바는 백인 문화를 전하려 노력했고, 수족은 던바에게 호감을 느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던 중, 던바가 이전에 도왔던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가 통역을 자청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파우니족에게 가족을 잃고 수족에게 길러졌기 때문에 라코타어와 영어를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밤, 던바는 들소 떼의 이동을 발견하고 수족에게 알렸다. 수족은 던바와 함께 사냥에 나섰고, 던바는 수족 방식의 사냥에 참여하며 평안함을 느꼈다. 던바는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여, "늑대와 춤을"이라는 인디언 이름을 얻고 수족의 일원이 된다.
3. 4. 사랑과 늑대와 춤을
1863년 가을, 테네시 주는 남북 전쟁의 격전지가 되었고, 북군 중위였던 존 던바는 그 속에서 오른발에 중상을 입는다. 던바는 발을 절단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결연한 마음으로 말을 몰아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미끼가 되어 남군 병사들의 주의를 흩뜨렸다. 그 틈을 타 북군은 일제히 진격을 시작하여 승리했고, 던바는 미끼로서의 공적을 기려 단숨에 영웅이 되어 보상으로 자유롭게 근무지를 선택할 권리를 얻었다. 던바는 "잃기 전에 프론티어를 보고 싶다"며 사우스다코타 주의 세지윅 요새로 부임을 자청하여 탁 트인 황무지와 황폐한 "요새"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시작했다.
던바는 사랑하는 말 시스코와 "투 삭스(두 개의 양말)"라고 이름 붙인 늑대와 어울리며 생활했다. 어느 날, 수족인디언이 시스코를 훔치러 오자, 던바는 총(알몸)으로 위협하여 쫓아냈다. 자신의 부락에서 "이상한 생활을 하는 백인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수족은 부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던바와 접촉을 시도하는 편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던바 또한 인디언과의 접촉을 원했다. 다음 날, 군복을 입고 성조기를 든 던바는 인디언의 야영지로 향하던 중, 큰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여성을 발견했다. 인디언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푸른색이었다. 던바가 도우려 하자 그녀는 공포에 떨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부상이 악화되어 의식을 잃자 던바는 그녀를 수족 부락까지 데려다주었다.
처음에 부락 사람들은 백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던바를 불신하며 거부했지만, 그의 인품을 알아본 추장(치프)의 배려로 며칠 뒤 "발로 차는 새"와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이라고 불리는 두 남자를 답례도 겸하여 던바에게 보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자신들을 받아들이고 정성껏 대접하는 던바에게, 부락의 중심 인물인 "발로 차는 새"는 호감을 느꼈다. 이후 수족들은 빈번하게 던바를 찾았고, 던바 또한 선주민족인 그들에게 백인 문화를 전하려 시도하면서 점차 서로의 우호를 깊게 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답답해하던 양측의 통역을 자청한 것은, 던바가 이전에 도왔던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라고 불리는 푸른 눈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 수족과 적대하는 파우니족에게 가족을 잃고 도망쳐 나온 곳을 수족에게 거두어져 길러졌다. 때문에 라코타어는 문제없이 말했지만, 어릴 적 익혔던 영어는 서툴렀다. 그래도 그녀의 양아버지인 "발로 차는 새"와 던바의 도움으로 의사 소통이 가능해졌다.
어느 밤, 끔찍한 소리에 잠에서 깬 던바는 밖에서 버펄로 떼가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버펄로는 수족에게 생명의 양식이었다. 던바는 급히 수족에게 보고했고, 수족은 환호하며 던바를 인정하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던바는 수족과 함께 사냥에 나섰다. 모피와 뿔만 벗겨내고 시체를 방치하는 백인의 만행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신성한 의식이기도 한 수족 방식의 사냥에 참여하면서 던바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평안함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눈뜨게 된다.
교류를 깊게 하면서 던바는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 또한 던바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는 전 남편을 잃은 뒤부터 상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에 동료들 앞에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걸 알아챈 양어머니는 "발로 차는 새"에게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가 던바와 깊이 사랑할 수 있도록 그녀의 상을 풀 것을 제안했고, "발로 차는 새"도 승낙했다. 마침내 던바와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는 결혼하여 자신의 티피도 받았다. 게다가 던바는 부족민과 마찬가지로 "슌카마니투탄카 오브와치"("늑대와 춤을 추는 남자". 요새에서 투 삭스가 던바와 장난치는 것을 수족 남자가 목격한 데서 유래)라는 인디언 이름까지 얻어 수족의 일원이 되는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되찾는다.
3. 5. 이별과 새로운 시작
던바는 더 이상 동료들에게 폐를 끼칠 수 없다고 느껴, 사랑하는 아내를 데리고 눈 덮인 산속으로 들어갔다. 수족은 이별을 매우 아쉬워했다.
4. 제작 과정
《늑대와 춤을》은 1861년부터 펼쳐진 남북 전쟁 시대의 프런티어를 배경으로, 북군 중위와 수족이라 불리는 인디언 사이에서 맺어지는 마음의 교류를 그린 서부극이다. 이 영화는 선주민족인 인디언을 학살하고 버팔로를 멸종 직전으로 몰아넣은 백인 중심주의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프런티어에 대한 경의와 향수를 표현하여 기존 서부극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어눌한 영어를 쓰는 인디언"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인디언들이 그들의 언어로 말한다"는 점, 그리고 "타탄카(버팔로)"라는 단어가 이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또한 작품 속에서 종종 사용되는 라코타어에 영어자막이 달린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다만, 러셀 민스에 따르면, 인디언 언어에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남성어와 여성어의 구별이 있는데, 언어 지도자가 여성뿐이어서 배우들이 남녀 구분 없이 여성어 지도를 받았고, 이는 라코타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작품의 배경 연도는 전후 사건으로 미루어 1864년으로 추정되지만, 작중 미 육군이 텐 베어스 일행을 찾아 대원정을 벌이는 장면은 실제 역사와는 맞지 않는다. 실제 미 육군의 겨울 대원정은 1868년 11월에 있었다.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이 서부극을 비판하여 기록적인 적자를 낸 전례가 있음에도, 케빈 코스트너는 백인을 비판하는 내용의 서부극 제작에 착수했다. 제작·공개가 여러 번 연기되고 22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되면서(혹은 그에 필적하는 사재를 가진 코스트너에 대한 시기심) 일부 관객은 이 작품을 《천국의 문(Heaven's Gate)》에 빗대어 《코스트너의 문(Costner's Gate)》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1990년11월 영화 공개 이후, 당시 톱스타였던 코스트너의 첫 감독 작품이라는 화제성과 인디언 민족과 동화된 백인의 시점에서 당시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참신한 스토리, 웅대한 스케일과 섬세한 연출은 평론가와 관객 양쪽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미국 내에서만 제작비의 10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고, 서부극 영화로서는 역대 최고 미국 내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어 4.24억달러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제63회 아카데미상과 제48회 골든 글로브상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영화상을 받았으며, 코스트너는 로버트 레드포드, 워렌 비티에 이어 "감독으로도 성공한 톱스타"의 지위를 확립했다.
마이클 블레이크의 원작 소설은 발표 당시 백인을 비판하는 내용에 혐오감을 느낀 다수의 출판 관계자들에 의해 출판이 거부되었다. 하지만 배우케빈 코스트너는 원작 내용에 호감을 느껴 블레이크에게 자신이 감독도 겸임하는 형태로 영화화를 간청했다. 1988년에 원작이 일반에 공개되었고, 동시에 코스트너는 《언터처블》, 《필드 오브 드림스》의 성공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2류 스타의 지위를 확립하고 큰 부를 얻었다. 코스트너는 그 작품들로 얻은 사재를 모두 쏟아부어 1989년 7월에 촬영을 시작했다.
원작에서 주인공과 교류하는 인디언 부족은 코만치족이지만, 영화에서는 같은 평원의 부족인 수족으로 설정이 변경되었다. 영화에는 "텐 베어스"라는 수족의 "추장"이 등장하지만, 동시대에 실존했던 텐 베어스는 얌파리카 코만치족의 인물이다. 또한, 동시대의 "키킹 버드"는 카이오와족의 인물이며, 주술사가 아니었다. 이러한 불일치는 영화화 과정에서 부족 설정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텐 베어스"와 "키킹 버드"는 "족장"이 아니다.
4. 2. 촬영 및 미술
영화의 웅대한 원시 풍경은 와이오밍주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사우스다코타주에서 촬영되었다. 배드랜드 국립공원과 피어에서도 로케이션 촬영이 이루어졌다.
그레이엄 그린이 연기한 '발로 차는 새'는 수족의 성인이자 메리 맥도넬이 연기한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의 양아버지로 설정되었지만, 실제로는 맥도넬이 그린보다 2개월 연상이고, 양어머니를 연기한 배우와는 나이 차이가 두 살 밖에 나지 않는다. 그린을 비롯한 인디언 배우들은 라코타어를 구사하지 못해 촬영에 앞서 특별 훈련을 받았다.
4. 3. 음악
존 배리가 작곡한 웅장하고 서정적인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5. 평가 및 영향
《늑대와 춤을》은 1861년부터 펼쳐진 남북 전쟁 시대의 프런티어를 배경으로, 북군 중위와 수족이라 불리는 인디언 사이의 교감을 그린 서부극이다. 이 영화는 선주민족인 인디언을 학살하고 버팔로를 멸종 직전으로 몰아넣은 백인 중심주의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프런티어에 대한 경의와 향수를 표현하여 기존 서부극과는 차별점을 보인다. 또한, "어눌한 영어를 쓰는 인디언"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 "인디언들이 그들의 언어로 말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타탄카(버팔로)"라는 단어가 널리 알려진 것도 이 영화를 통해서였다. 작품 속에서 사용되는 라코타어에 영어자막이 달린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6] 다만, 러셀 민스에 따르면, 라코타어에는 남성어와 여성어의 구별이 있는데 언어 지도자가 여성뿐이어서 배우들이 남녀 구분 없이 여성어를 지도받아, 라코타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13]
원작 소설은 백인을 비판하는 내용 때문에 출판이 거부되었으나, 케빈 코스트너가 영화화를 추진하여 1988년에 원작이 공개되었다. 코스트너는 《언터처블》, 《필드 오브 드림스》의 성공으로 얻은 사재를 투자하여 1989년 7월에 촬영을 시작했다. 영화는 사우스다코타주에서 주로 촬영되었으며, 배드랜드 국립공원과 피어에서도 촬영이 이루어졌다. 제작 지연과 《천국의 문》의 실패 사례 때문에, 일부에서는 《코스트너의 문(Costner's Gate)》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평론 집계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는 77건의 평론을 바탕으로 지지율 83%, 평균 7.60/10점을 기록했고, 메타크리틱에서는 20건의 평론을 바탕으로 가중 평균 점수 72/100점을 기록했다.[6][7]
주인공의 결혼 상대가 백인이라는 설정은 인디언에 대한 차별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한 "인디언 부족들이 서로 손을 잡았다면 백인의 침략에 더 잘 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인디언에 대한 일반적인 고정관념 중 하나이다.[8]호피족 출신 영화 제작자 빅터 마사에스바는 다큐멘터리 영화 『이매지닝 인디언』에서 엑스트라 인디언들이 촬영 현장에서 냉대받고 위험한 연기를 저임금으로 해야 했던 내막을 폭로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백인=선, 인디언=악"으로 단정 짓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는 제작 자세가 높이 평가받는다. 미국 언론은 수 세기 동안 인디언을 "미개한 야만인"으로 규정하고 이미지화해 왔는데,[9]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인디언은 족장인 추장에 의해 통솔되는 전사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디언 사회에는 "족장", "권력자", "왕족"은 존재하지 않으며,[10] 추장은 중재자일 뿐 권력자가 아니다.[11] 인디언 사회에는 상하 관계나 "개인 숭배" 문화도 없다.[12]
영화 배우이자 아메리카 인디언 운동(AIM) 운동가인 러셀 민스는 이 영화에 대해 "코스트너 감독이 '술에 취한 인디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인디언 고정관념을 이용한 것은 좋은 의도였지만, 인디언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라코타어의 남성어와 여성어 구별 때문에 많은 인디언과 케빈 코스트너가 여성 말투로 이야기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고 언급했다.[13]
인디언 여성 운동가 수잔 쇼운 할조는 이 영화에 대해 아이들의 묘사나 케빈 코스트너의 아이 같은 웃음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백인이 선하고, 멋진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인디언은 이야기의 조연일 뿐이라고 비판했다.[14]
5. 1. 비평적 성공과 흥행
1990년11월에 영화가 공개되자, 당시 톱스타였던 케빈 코스트너의 첫 감독 작품이라는 화제성과 인디언 민족과 동화된 백인의 시점에서 당시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참신한 스토리, 웅대한 스케일과 섬세한 연출이 평론가와 관객 양쪽으로부터 절찬을 받았다. 미국 내에서만 제작비(2200만달러)의 10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으며, 서부극 영화로서는 역대 최고 미국 내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크게 흥행하여 전 세계에서 4.24억달러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제63회 아카데미상과 제48회 골든 글로브상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영화상을 수상하였고, 코스트너는 로버트 레드포드, 워렌 비티에 이어 "감독으로도 성공한 톱스타"의 지위를 확립했다. 수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1861년부터 펼쳐진 남북 전쟁 시대의 프런티어를 무대로 북군 중위와 수족이라 불리는 인디언 사이에서 맺어지는 마음의 교류를 그린 서부극이다. 선주민족인 인디언을 학살하고 버팔로를 멸종 직전으로 몰아넣은 백인 중심주의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프런티어에 대한 경의와 향수를 표현한 점에서 기존 서부극과는 크게 선을 그으며, 그전까지의 "어눌한 영어를 쓰는 인디언"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에서도 벗어나 "인디언들이 그들의 언어로 말한다"는 점에서도 화제가 되었다.[6] "타탄카(버팔로)"라는 단어도 이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작품 속에서 종종 사용되는 라코타어에 영어자막이 달린다는 점에서도 이색적인 작품이다. 다만 인디언 언어에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남성어와 여성어의 구별이 있는데, 언어 지도자가 여성뿐이었기 때문에 배우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여성어 지도를 받았다. 러셀 민스에 따르면, 라코타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되는 내용이 되었다고 한다.[13]
마이클 블레이크의 원작 소설은 발표 당시 백인을 비판하는 내용에 혐오감을 느낀 다수의 출판 관계자들에 의해 출판이 거부되었다. 하지만 배우케빈 코스트너는 원작의 내용에 호감을 느껴(코스트너 자신도 체로키와 독일, 아일랜드 혼혈이다) 블레이크에게 자신이 감독도 겸임하는 형태로 영화화를 간청했다. 1988년에 드디어 원작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과 동시에 코스트너는 《언터처블》, 《필드 오브 드림스》의 성공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스타의 지위를 확립하고 거대한 부를 얻었다. 그 작품들로 얻은 사재를 모두 쏟아부어 1989년 7월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영화사에 남을 만한 웅대한 스케일의 원시 풍경은 일부 와이오밍주를 제외하고 거의 사우스다코타주에서 촬영되었다. 그 외에도 배드랜드 국립공원과 피어에서도 로케이션 촬영이 진행되었다.
제작·공개가 여러 번 연기되었던 점이나 마이클 치미노가 《천국의 문》에서 서부극을 비판하여 기록적인 적자를 낸 전례가 있는데도 코스트너 역시 백인을 비판하는 내용의 서부극에 착수한 점, 2200만달러라는 거액을 제작비로 쏟아부은 점에서 일부 관객은 이 작품을 《천국의 문(Heaven's Gate)》에 빗대어 《코스트너의 문(Costner's Gate)》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1990년11월 영화가 공개되자, 당시 톱스타였던 코스트너의 첫 감독 작품이라는 화제성과 인디언 민족과 동화된 백인의 시점에서 당시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참신한 스토리, 더욱이 웅대한 스케일과 다이내믹하면서도 섬세한 연출이 평론가와 관객 양쪽으로부터 절찬을 받았다. 미국 내에서만 제작비의 10배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으며, 서부극 영화로서는 역대 최고 미국 내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대히트를 기록하여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서 4.24억달러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더불어 제63회 아카데미상과 제48회 골든 글로브상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영화상을 수상하였고, 코스트너는 로버트 레드포드, 워렌 비티에 이어 "감독으로도 성공한 톱스타"의 지위를 확립했다.
평론 집계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는 77건의 평론을 바탕으로 지지율 83%, 평균 7.60/10점을 기록했다.[6]메타크리틱에서는 20건의 평론을 바탕으로 가중 평균 점수 72/100점을 기록했다.[7]
주인공의 결혼 상대가 백인이라는 설정에 대해서는 인디언에 대한 차별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인디언 부족들이 서로 손을 잡았다면 백인의 침략에 더 잘 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인디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고정관념 중 하나이다.[8]
또한, 호피족 출신 영화 제작자 빅터 마사에스바의 다큐멘터리 영화 『이매지닝 인디언』에서는 이 영화에 출연한 엑스트라 인디언 젊은이들이 등장하여 촬영 현장에서 냉대받으며 위험한 연기를 저임금으로 해야 했던 내막을 폭로했다.
이 영화는 서부극 영화에 대표되는, 그동안의 "백인=선, 인디언=악"으로 단정 지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는 제작 자세가 높이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언론은 수 세기 동안 인디언을 일방적으로 "미개한 야만인"으로 규정하고 이미지화해 왔다.[9]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디언은 족장인 추장에 의해 통솔되는 전사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디언 사회에는 "족장"이나 "권력자", "왕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10] 추장은 단순한 중재자일 뿐, 권력자가 아니다.[11] 인디언 사회에는 상하 관계라는 것이 없다. 또한 "개인 숭배"라는 문화도 가지고 있지 않다.[12]
영화 배우로서 처음 출연한 러셀 민스는 인디언 권리 단체 "아메리카 인디언 운동(AIM)"의 운동가이기도 하다. 러셀은 이 작품에 대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13]
: 코스트너 감독이 할리우드적인 인디언의 고정관념 중 "술에 취한 인디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인디언 상을 이용한 것은 좋은 의도였습니다. 인디언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기억하시나요? 이 작품의 인디언은 마치 (영웅화된) '평원의 로렌스'였습니다.
: 이 영화의 우스운 점이라면, 배우들에게 수족의 말을 가르치는 여성이 있었는데, 라코타족에게는 남성 말투와 여성 말투가 있거든요. 많은 인디언과 케빈 코스트너가 여성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많은 라코타족 사람들과 함께 그것을 보러 갔을 때,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인디언 여성 운동가 수잔 쇼운 할조는 이 영화에 대해 아이들의 묘사나 케빈 코스트너의 아이 같은 웃음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14]
: (생략) 그러한 모든 것이 우리와는 너무나 동떨어져서, 전혀 닮지 않아서, 어느 부분에서도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생략) 이런 영화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문제는 백인이 선하고, 멋진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인디언은 이야기의 조연일 뿐입니다. 저는 백인이 영화를 만드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것은 그들 이외의 다른 사람에 관한 영화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생략) 쉰들러 리스트는 유대인이나, 스필버그와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만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올리버 스톤이 베트남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베트남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5. 3. 비판적 시각
로튼 토마토에서는 77건의 평론을 바탕으로 지지율 83%, 평균 7.60/10점을 기록했다[6]. 메타크리틱에서는 20건의 평론을 바탕으로 가중 평균 점수 72/100점을 기록했다[7].
주인공의 결혼 상대가 백인이라는 설정에 대해서는 인디언에 대한 차별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인디언 부족들이 서로 손을 잡았다면 백인의 침략에 더 잘 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인디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고정관념 중 하나이다[8].
호피족 출신 영화 제작자 빅터 마사에스바의 다큐멘터리 영화 『이매지닝 인디언』에서는 이 영화에 출연한 엑스트라 인디언 젊은이들이 등장하여 촬영 현장에서 냉대받으며 위험한 연기를 저임금으로 해야 했던 내막을 폭로했다.
이 영화는 서부극 영화에 대표되는, 그동안의 "백인=선, 인디언=악"으로 단정 지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하는 제작 자세가 높이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언론은 수 세기 동안 인디언을 일방적으로 "미개한 야만인"으로 규정하고 이미지화해 왔다[9].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디언은 족장인 추장에 의해 통솔되는 전사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인디언 사회에는 "족장"이나 "권력자", "왕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10]. 추장은 단순한 중재자일 뿐, 권력자가 아니다[11]. 인디언 사회에는 상하 관계라는 것이 없다. 또한 "개인 숭배"라는 문화도 가지고 있지 않다[12].
영화 배우로서 처음 출연한 러셀 민스는 인디언 권리 단체 "아메리카 인디언 운동(AIM)"의 운동가이기도 하다. 러셀은 이 작품에 대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13].
: 코스트너 감독이 할리우드적인 인디언의 고정관념 중 "술에 취한 인디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인디언 상을 이용한 것은 좋은 의도였습니다. 인디언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기억하시나요? 이 작품의 인디언은 마치 (영웅화된) '평원의 로렌스'였습니다.
: 이 영화의 우스운 점이라면, 배우들에게 수족의 말을 가르치는 여성이 있었는데, 라코타족에게는 남성 말투와 여성 말투가 있거든요. 많은 인디언과 케빈 코스트너가 여성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많은 라코타족 사람들과 함께 그것을 보러 갔을 때,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인디언 여성 운동가 수잔 쇼운 할조는 이 영화에 대해 아이들의 묘사나 케빈 코스트너의 아이 같은 웃음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14].
: 그러한 모든 것이 우리와는 너무나 동떨어져서, 전혀 닮지 않아서, 어느 부분에서도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런 영화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문제는 백인이 선하고, 멋진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인디언은 이야기의 조연일 뿐입니다. 저는 백인이 영화를 만드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것은 그들 이외의 다른 사람에 관한 영화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쉰들러 리스트는 유대인이나, 스필버그와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만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올리버 스톤이 베트남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베트남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6. 한국 방영
한국에서는 1993년 10월 1일에 KBS에서 첫 방영 하였고 1995년 재방했다. 그리고 SBS에서는 2005년 신년특선으로 방송했다.[1]
마이클 블레이크가 《늑대와 춤을》의 각본을 쓴 후 2001년에 《'''홀리 로드'''》(The Holy Road)라는 제목의 《늑대와 춤을》 속편 소설을 출간했다. 이 이야기의 제목인 'The Holy Road'는 백인에 의한 대륙 횡단 철도 부설로 인한 평원 인디언과의 문명 충돌을 암시한다.
이야기는 11년 후인 1874년을 배경으로 한다. 던바 전 육군 중위는 코만치족 전사 "늑대와 춤추는 남자"로서 어린 시절 코만치족 밑에서 자란 백인 여성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와 결혼하여 아들 2명과 딸 1명, 총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이들은 사우스다코타주 수족의 거주지에 가까운 평원에서 10명의 코만치족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홈스테드법에 의해 백인의 이주가 코만치족의 영역을 침해하게 되고, 백인이 철도 선로를 부설하기 위해 그들 코만치족의 거주지에 들어섰다. 또한 백인 사냥꾼이 코만치족의 생명의 근원인 버팔로를 무차별적으로 사살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코만치족은 분노했다. 백인의 레인저대가 마을을 공격하여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와 어린 딸을 유괴하여 포로로 잡았다. 수족의 영역에도 철도 선로가 부설되려 하자 "발로 차는 새"는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과 던바, 즉 "늑대와 춤추는 남자"에게 침입자인 백인과 싸울 것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고, 동시에 유괴되어 포로가 된 아내 "주먹을 쥐고 서 있는 여자"와 딸을 구출하러 간다는 내용이다.
사이먼 스펜서 감독에 의해 영화화가 진행될 예정이지만, 케빈 코스트너가 출연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참조
[1]
웹사이트
Dances with Wolves (1990)
https://www.boxoffic[...]
Amazon.com
2010-02-16
[2]
서적
キネマ旬報ベスト・テン85回全史 1924-2011
キネマ旬報社
2012
[3]
문서
原題のDances with Wolvesのdancesは、動詞のdanceの3人称単数形であり、カタカナに転写すると「ダンスィズ」になるが、邦題は「ダンス」である。
[4]
문서
全世界を含めると『[[レヴェナント: 蘇えりし者]]』、『[[ジャンゴ 繋がれざる者]]』が同記録を超えている。
[5]
방송
2019年10月24日放送されたもの
2019-10-24
[6]
movie
Dances with Wolves
2022-10-15
[7]
movie
Dances with Wolves
2022-10-15
[8]
서적
AMERICAN INDIANS: Stereotypes & Realities
Clarity Press, Inc.
[9]
서적
The White Man's Indian: Images of the American Indian from Columbus to the Present
Vintage
[10]
서적
Lies Across America: What Our Historic Sites Get Wrong
Touchstone
[11]
서적
Readings in Jurisprudence and Legal Philosophy
[12]
서적
CRAZYHORSE
Penguin
[13]
기사
Russell Means Freedom
2009-05-20
[14]
인터뷰
Los Angeles Times Interview
199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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